생맥주를 병맥주로 '병 갈이'…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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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맥주를 병맥주로 '병 갈이'…왜

‥ 생활정보

by 토파니 2020. 10. 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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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맥주 이야기입니다. ‘생맥주 담긴 통 내부 잘라보니’ 이후 두 달 정도 지났네요. 이번에는 생맥주와 병맥주를 아우르는 내용입니다. 소비자와 연관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넘는 취재 과정에서 궁금증이 해소된 부분이 있고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 물음표를 여러분께 던지고 싶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생맥주가 병맥주로 둔갑하다

경기도에 한 주류 도매업체가 있습니다. 주류 도매업체는 주류 제조사(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에서 술을 공급 받아 대형마트나 음식점 등에 판매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업체 직원 한 명이 생맥주 통(케그)에서 맥주를 다른 통에 쏟아 붓더니, 다시 그걸 물뿌리개에 옮겨 담는 겁니다. 그런 뒤 빈 맥주병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더군요. 그러자 다른 직원이 나타나 채워진 맥주병에 뚜껑을 착착 닫습니다. 심지어 맥주 상표를 깨끗한 걸로 붙이는 장면까지 목격됐습니다. 생맥주가 병맥주로 ‘변신’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변신한 병맥주를 들고 직원은 촬영이 불가능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일련의 이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일상적인 업무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병 갈이’ 매일 그런 건 아니었지만, 했다 하면 하루에 2~3박스씩 ‘병 갈이’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 왜 ‘병 갈이’를 하는 걸까

촬영한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가능한 시나리오를 떠올렸습니다. 주류 유통업체는 제조사에서 생맥주가 담긴 통(케그) 하나를 2만 5천 원 정도에 공급받습니다. 이게 20,000ml. 그리고 병맥주 한 상자에 30병 들어가는 330ml짜리 병맥주는 2만 원 선에서 받아옵니다. 이건 9,900ml. 케그 한 통을 모두 병맥주로 만든다면 대충 두 상자가 나오죠. 다시 말해 2만 5천 원어치의 생맥주를 투입해서 4만 원어치 병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1만5천 원이 남는 장사인 셈입니다.

그래도 계속 의문은 남습니다. 정밀한 제조 공정을 거쳐 나온 병맥주와 ‘병 갈이’ 된 병맥주는 분명히 차이가 날 겁니다. 한 번 열린 뚜껑을 손으로 얼마나 잘 닫을 수 있을지, 빠져 나간 김은 또 어떻게 할 건지, 손으로 대충 채운 맥주 양도 정교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난 번 생맥주 취재 당시 도움을 받았던 주류 유통업계 관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병 갈이’가 가능한 일이냐고요.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남은 병맥주를 ‘병 갈이’ 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생맥주를 병맥주로 만든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운을 남겼습니다. “다만 생맥주나 병맥주나 차게 만들어 맛을 구별하라면 이 방면에 20년 잔뼈가 굵은 나조차도 쉽게 구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죠.

● "절대 소비자에게 팔지 않았다"

일주일 가까이 그 들을 지켜본 끝에 저희는 해명을 듣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병 갈이’ 자체를 부인하더군요. 촬영 영상을 보여주자 그제야 ‘병 갈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병 갈이’ 한 맥주 상자를 절대 시중에 유통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공장 안으로 갖고 들어간 ‘병 갈이’ 상자와 저희가 촬영한 상자가 같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 말을 일단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병 갈이’를 한 진짜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배달 준비를 하다 보면 한 두 상자씩 깨지는 경우가 있답니다. 이럴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유통 업체의 몫입니다. 하루에 2~4만 원씩만 쳐도 한 달이면 최대 100만 원이 넘습니다. 이걸 만회하기 위해 생맥주를 병맥주로 만들어 주류 제조사에 반품 처리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게 뭐가 잘못이냐”며 오히려 취재진을 나무랍니다. 공은 이제 주류 제조사로 넘어가게 됩니다.

● 주류 제조사는 ‘호갱님’(?)

주류 제조사 측의 반품 기준을 알아봤습니다. 국내 3대 제조사 모두 비슷비슷하더군요. 첫째로 주문한 양보다 더 많이 보냈을 때, 둘째 품질 유지 기한이 지났을 때, 셋째 제조사가 유통업체로 넘겨주는 과정에서 제조사 측 잘못으로 파손된 게 입증될 때, 넷째 해당 상품이 단종 됐을 때 정도입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세 번째 기준입니다. 유통 업체가 밝힌 ‘작업하다 맥주병이 깨졌을 때’와 교집합을 이루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유통 업체가 자신들이 실수로 깬 맥주를 제조사 책임으로 돌리기엔 역부족일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묘수가 바로 깨진 맥주병만큼 ‘병 갈이’를 해서 반품하는 것이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말이죠. 문제의 유통 업체가 ‘병 갈이’ 한 맥주라며 보여준 그 맥주병들은 모두 조금씩 조잡했습니다. 정상적인 병맥주와 비교해 양도 조금씩 다르고, 김도 빠진 게 보이고 말이죠. 유통 업체는 도대체 무슨 핑계를 대며 이런 맥주병을 반품해왔을까요.

제조사의 반품 기준이 느슨해서 ‘병 갈이’ 된 병맥주를 무턱대고 받아줬을까요? 이게 사실이라면 제조사는 해당 유통업체에게 ‘호구’가 된 것이겠죠. 아니면 문제의 유통 업체가 저에게 ‘병 갈이’ 된 거라고 보여준 병맥주가 실제로는 다른 병맥주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건 소규모 유통 업체의 ‘푼돈 챙기기’를 넘어선 주류 유통 체계의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을 겁니다. 저 조차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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