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후 돌싱(싱글맘)으로 죽을 만큼 힘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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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후 돌싱(싱글맘)으로 죽을 만큼 힘들 때

‥ 요모조모

by 토파니 2020. 11. 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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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그 의미가 퇴색된 말이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죽겠네’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그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순간 ‘좀 힘든가보다’ 정도로 생각하지 진짜 죽을 것 같이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심정을 제자들에게 밝히시면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38절), 즉, ‘죽을 것’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 때’ 우리 주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 태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첫째. 기도할 자리를 찾아가셨습니다.

본문 36절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가셨다”고 했는데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2장 39절에서 누가는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강조하면서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막1:35)고 했고, 누가는 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감화를 받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데서부터 주기도문이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11:1-4).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면 우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시각이 아닌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생겼을 경우 문제만 보일뿐 해답(기도)이 쉽게 보이거나 생각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기도할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방법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지난 1월 모 교단은 미자립교회 담임목사가 상회(?)에 허락을 받으면 이중직을 허용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 전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들에게까지 충격과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 생활 문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든 문제일까?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 생활문제는 최근에 생겨난 문제도 아니고 기독교 역사와 함께 생겨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생활문제로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사명이라고 받아들였고 기도하며 감당했었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기도할 자리를 찾지 않고 해결하기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죽을 만큼 힘들 때 동역 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야고보, 요한), 이렇게 세 명의 제자만 택하셨습니다(37절). 믿음직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을 알려주고 기도 부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가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합심기도의 중요성을 교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두 사람이 합심하여 땅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고 하시면서 합심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죽을 만큼 힘들 때 함께 기도할 동역 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셨고, 하나님의 입장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절).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독려하여 스스로 고난의 길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이 찾아온다면 겟세마네 주님을 기억하며 반드시 승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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